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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도어 루즈벨트 생가(Theodore Roosevelt Birthplace)는 맨해튼 20스트릿, 브로드웨이와 파크애브뉴 사이에 있다. 미국의 26대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1858-1919)이 태어난 곳이다.

루즈벨트가 실제 태어났던 집은 1916년 파손됐다. 1919년 루즈벨트의 사망 직후 추모단체에서 부지를 구입해 원래 생가에 가깝게 복원했다. 이후 루즈벨트의 생애와 업적에 관련된 각종 자료를 모아 보존,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일종의 대통령 기념관이라고 할 수 있다.

루즈벨트는 열정적인 삶을 산 행동가이자, 20세기 역사에서 미국이 세계를 리드하는 초강대국으로 떠오를 수 있도록 초석을 놓은 정치가라고 할 수 있다.

뉴욕의 부유층 가정에서 태어난 루즈벨트는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23세의 나이로 뉴욕주의원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다. 골수 공화당원이었던 루즈벨트는 1986년 해군차관보가 돼 군함 건조 등에 역할을 했고,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이 발발하자 ‘러프 라이더스(Rough Riders)’라는 의용 기병연대를 조직해 대령 계급장을 달고 참전, 산 후안 전투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단숨에 전국적 영웅으로 떠오른 루즈벨트는 뉴욕주지사와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 시절 부통령을 거쳐 1901년에는 대통령에 당선됐고 이후 8년간 재임했다.

루즈벨트는 내치에서는 철도업에 대한 국가통제, 노동자보호 입법, 자원보존 등의 정책을 폈고 대외적으로는 날로 커지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러일전쟁 중재(1907년 노벨평화상 수상), 모로코사태 해결, 파나마 운하 건설, 카리브해 등 남미에 대한 미국 영향력 확대 등을 추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성공 뒤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늘 병약함에 시달렸고, 부인과의 사별, 정적들의 치열한 공격과 암살 기도 등에 시달리다 61세라는 많지 않은 나이로 생애를 마감했다.

루즈벨트 생가에는 이러한 그의 지난한 생애를 대변하듯 ^역사적인 서류 ^모친과 부인의 죽음을 ‘빛의 상실’로 비유해 서술한 일기장 ^가족의 초상화 ^사냥대회 트로피 ^군용 나팔 ^암살범으로부터 총격을 받았을 때 입었던 구멍 뚫린 셔츠 ^파마나 운하 기공식 때 첫 삽에 뜬 흙을 담은 단지 등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자료 중에는 대통령으로 혁신주의 정책을 펴던 시절 각종 미디어에 나온 신랄한 비판 내용을 담은 풍자화 콜렉션 등도 포함돼 있다.

루즈벨트 생가는 이들 소장품을 시기별로 5개의 방과 2개의 뮤지엄 갤러리에 전시하고 있다. 또 관람객이 신청하면 루즈벨트의 생애를 담은 25분짜리 기록영화를 상영해 주기도 한다.



박종원 기자[뉴욕 중앙일보]

Posted by meg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