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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학 탐방] Dartmouth College - 다트머스 칼리지

03/02/2007


미국 최고의 명문 대학그룹인 아이비리그 대학이면서 캠퍼스에서 자동차로   20분만 가면 학생 전용 스키장과 골프장이 있고 기숙사  바로  아래를 흐르는 계곡에서 카누를 즐길 수 있는 곳, 그런가 하면 한 시간 반 떨어진 아름다운 산간지대에 무려 3천 2백 4-만 평에 달하는 학교전용 산림지대가 있어서 아주 적은 이용료만 내면 통나무 오두막집을 빌려 별을 쳐다보며 꿈과 낭만을 즐길 수 있는 대학. 일단 어려운 경쟁을 헤치고 대학에 들어오면 아무리 가난해도 학교와 동문회의 배려로 공부를 마칠 수 있는 대학. 

이런 대학이 바로  뉴 햄프셔 주 하노버에 있는 다트머스 칼리지입니다. 다트머스 칼리지는 뉴 햄프셔 주와 버몬트 주를 가르는 코네티컷 강이 바로 캠퍼스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넓다란 언덕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아홉 번째로 오래된 대학의 연륜을 말해주듯 고풍스런 대학 건물이 곳곳에 흩어져 있으며 바로 길 건너에 있는 하노버 읍의 상점들까지도 오랜 연륜을 쌓은 건물속에 들어 있습니다.

다트머스 대학은 1769년 영국 식민지하에 있던 당시 일리지어 윌록이라는 목사가 그 당시로서는 미개척지 였던 이 땅에서 아메리카 본토인 즉, 인디언을 교육시키는 교육기관으로 처음 설립했습니다.  그러나 다트머스 대학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교육기관이라기 보다는 유능한 미국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대학으로 발전했고 1800년대 중반 미국의 전통명문사학 즉 아이비리그로써 자리를 굳혔습니다.

 다트머스 대학은 이미 1900백 년대 초 부터 4천명의 재학생을 갖고 있었는데 2006년에도 학생수가 5천 300여명으로 별로 크게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적은 숫자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 정도의 학생수를 유지하는 것이 미국의 유능한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에 적절하다는 학교측의 결론, 여기에다 이 정도의 재학생을 유지하는 것이 동문 선배들로서는 뒤를 돌보아주기가 알맞다는 동창회 측의 의견이 일치된 때문입니다.

다트머스 대학 입학에는 지원자의 재정형편이나 출신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습니다. 대학입학 심사과정에서 전혀 묻지도 않고 고려도 않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학교와 동문회가 어떤 방법으로든 학비를 메꾸어주고 있습니다. 현재 생존해 있는 다트머스 졸업생의 3분의 2이상이 해마다 기부금을 내 모교와 후배들을 돕고있습니다.

다트머스 대학은 긴 역사를 통해 변하지 않는 교육의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그 것은 대학교수는 학생들에게 학문을 가르침으로써 그 가치가 있다는 철저한 인식입니다. 아무리 학문적인 큰 업적을 거두고 연구에 바쁜 교수라해도 또 아무리 연로한 교수라 할지라도 강의시간은 새로 갓 취임한 젊은 교수와 똑 같이 책임지고 있습니다.

다트머스 대학 캠퍼스에서는 도서관은 물론 다른 어느건물을 가더라도 귀족이나 학자의 서재처럼 꾸며진 작은 방들이 눈에 띕니다. 낡았지만 값진 카페트가 깔려있으며 골동품 같은 소파와 의자가 준비돼 있고 책꽂이에는 때묻은 오랜 책들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습니다.

바로 이 곳이 다트머스의 학생들이 교수와 함께 언제든지 토론을 나누도록 갖추어진 역사깊은 토론실입니다.

다트머스 대학이 있는 하노버읍에는 술집과 식당, 서점, 옷 가게 등 학생들을 위한 상점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습니다. 미국내 어디서든 몇 블럭 간격으로 볼 수 있는 패스트 푸드점도 다트머스 대학 주변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런 패스트푸드점은 다트머스 대학의 교육방침에 어긋난다는 대학측과 동창들의 결정 때문에 그 진출이 저지되었습니다. 간단히 서둘러 식사를 마치게 돼있는 그런 음식점에서는 학문적인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다트머스의 판단이었습니다.

다트머스 대학은 미국의 대학교육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학교이기도 합니다.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미국 정부는 다트머스 대학을 공립대학으로 바꾸려했습니다.

정부는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영국의 조지 3세가 땅을 내놓아 세운 이 대학은 마땅히 미국정부에 귀속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대해 이 대학 출신으로 전설적인 웅변가였던 다니엘 웹스터는 사립교육 기관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학문의 자유를 헤치는 것으로 부당하다고 맞섰습니다. 그 결과 다트머스 대학은 미 연방 대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았으며 이 다트머스 칼리지 사건은 미국은 물론 세계의 사립대학의 독자성을 확인해준 커다란 사건이 됐습니다. 다트머스 대학의 동창들은 정부라는 큰 조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다트머스 대학이 길러준 논리적 사고였다고 믿고있습니다. 또한 이 논리적 사고는 교수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교수와 학생간 토론으로 형성 됐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강한 신념은 지금 인문학과, 자연학과, 사회과학 등 세개의 학부과정과 의학, 공학,  경영학 등 3개 대학원 과정의 교육에서도 그대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학생과 교수는 물론 학교 앞에 있는 가게 점원들에 이르기 까지 공동사회의 일원이라는 강한 긍지와  책임감에 넘쳐있는 다트머스 대학. 이런 대학에서 미국사회를 이끄는 수 많은 지도자가 배출 되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Voice of America News


Posted by me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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