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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들이 타고온 3개의 개척선 중 하나인 디스카버러호. 1607년의 배와 똑같이 만들어져 제임스타운 앞바다에 전시되어 있다.

■제임스타운(JamesTown)

워싱턴 DC에서 차로 두어 시간 내려가면 버지니아의 제임스타운이 나온다. 미국 역사책에도 나오는 제임스타운은 영국인들이 처음으로 미국에 발을 내딛어 인디언들과 교류한 발상지이다. 올해 2007년으로부터 꼭 400년 전이다. 타운 전체가 1600년대의 모습 그대로 재현되어 있고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당시의 복장을 하고 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제임스타운은 지금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디즈니랜드처럼 운영되고 있어 입장권을 사야 들어갈 수 있다.

1607년 5월13일 영국에서 제임스리버 지역을 식민지화시키기 위해 영국의 지도자들이 5개월의 항해 끝에 버지니아에 도착했다. 이들은 당시 영국왕의 이름을 따라 킹 제임스 정착팀이라고 호칭하고 버지니아의 런던 컴파니를 설립, 본격적인 식민정책에 들어간다.

이후 1613년 담배 무역을 주도하기 위해 영국에서 존 롤프가 제임스타운에 오고 버지니아의 30부족을 이끌던 인디언 추장 포한탄의 딸 포카혼타스를 만나 1614년 결혼한다. 그리고 포카혼타스는 1617년 영국에서 숨진다.

디즈니 만화영화로 친숙해 있는 포카혼타스의 고향인 제임스타운(JamesTown)은 한폭의 그림과 같은 곳이다.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에서 콜로니얼 파크웨이를 타고 가다보면 제임스 리버를 끼고 펼쳐지는 평화로운 자연경관이 마음을 푸근하게 맞이한다.

▲인디언과의 싸움에 사용된 장총을 시범 보이고 있다.

제임스 타운은 볼거리는 크게 제임스 타운 세틀먼트(Jamestown Settlement)와 히스토릭 제임스 타운(Historic Jamestowne)으로 나눠져 있다. 제임스 타운 정착지에서는 인디언과 초기 정착인들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으며 히스토릭 제임스 타운에서는 초기 식민지의 생활과 담배 등의 무역 활동을 엿볼 수 있다.

히스토릭 제임스타운에는 포카혼타스 동상, 1639년에 세워진 교회, 존 스미스 동상, 영국군이 도착해 처음으로 주둔한 지역과 유리제작소가 있다. 이곳에는 영국에서 타고 온 3척의 배인 수잔 컨스턴트, 갓스피드 그리고 디스커버리가 전시돼 있다. 1600년도의 버지니아 인디언의 모습과 정착자들의 생활과 문화, 유산물들도 볼 수 있다.

제임스타운의 시작을 소개하는 15분짜리 다큐드라마를 보고 관광을 시작하면 이곳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히스토릭 제임스타운과 제임스타운 세틀먼트를 전부 둘러보는데 6시간 이상이 소요되지만 많은 역사를 배울 수 있다.

▶웹사이트: www.Americas400thAnniversary.com


▲포카혼타스

■인디안 처녀 포카혼타스

개척회사 버지니아 컴퍼니가 후원하는 영국인들이 처음으로 제임스타운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607년 5월14일-런던을 떠난 후 6개월 만에 미국 땅에 도착했다. 104명의 일행 중 여자는 한 명도 없었다. 이로부터 13년 후 다시 청교도들이 매서추세츠에 상륙하게 된다.

어느날 스미스 선장은 정찰대를 구성해 돌아다니다가 알곤키안 인디언을 만나 포로가 된다. 대원들은 대부분 죽고 스미스 선장을 인디언들이 바위 위에 올려놓고 몽둥이로 쳐 죽이려는 순간 10여세된 인디언 추장의 딸이 스미스 선장의 몸을 덮으며 살려달라고 아버지 포와탄 추장에게 호소한다.

이 인디언 소녀가 후일 버지니아 역사에 영향을 끼친 포카혼타스(사진)다. 포카혼타스는 귀염둥이라는 뜻이며 그녀의 인디언 이름은 마토아카다. 포와탄 추장은 스미스 선장을 양자로 삼고 잘 대접한 후 제임스타운으로 돌려보낸다.
 
그 후 백인촌에 식량난으로 굶어죽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포카혼타스는 인디언 음식을 제임스타운에 배달하여 많은 사람을 살린다. 그러나 어느 날 화약을 다루던 스미스 선장이 화상을 입고 런던으로 후송된다. 백인들은 제임스타운을 찾아온 포카혼타스에게 “스미스 선장이 죽었다”고 거짓말한다.

▲영국 개척인들의 집. 대부분 식량난과 질병으로 사망했다.

백인들은 인디언 습격을 피하기 위해 포카혼타스를 인질로 잡고 포와탄 추장과 협상을 벌인다. 1년간의 인질상태에서 포카혼타스는 영어를 배우게 되며 나중에는 세례까지 받고 크리스찬이 되어 레베카로 이름도 고친다. 그리고는 착실한 기독교도인 존 롤프라는 백인 청년과 1614년 결혼해 아들을 낳는다.

개척회사 버지니아 컴퍼니는 영국인의 미국 이민을 늘리고 인디언이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 포카혼타스 가족과 인디언 8명을 런던에 초청하여 극진한 대우를 베푼다. 여기서 포카혼타스는 죽은 줄 알았던 스미스 선장과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된다. 그러나 포카혼타스는 폐렴에 걸려 영국 땅에서 2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포카혼타스는 영국인과 인디언의 평화를 가져오고 제임스타운을 기아에서 구한 업적으로 버지니아주 곳곳에 동상이 세워져 있고 그녀의 이름을 딴 도시와 학교, 도로들이 많다. 그녀의 후손 중에는 주지사(해리 버드)와 해군 제독(리차드 버드) 등 여러 명의 유명인이 있으며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부인 에디스 여사도 포카혼타스의 후예이다.

포카혼타스의 이야기는 스미스 선장이 쓴 회고록에 의한 것인데 자신을 구한 부분의 이야기는 좀 과장되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다. 몇년 전 월트 디즈니에서 포카혼타스 이야기를 만화영화로 만들어 히트하자 인디언들은 영화의 내용이 백인 입장만 고려한 것이라고 항의했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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