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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1920년대 뉴욕은 고층 건물 전쟁이 진행 중이었다. H. 크레이드 세버런스 맨해튼컴패니 빌딩에 이어 크라이슬러 빌딩의 '비밀병기'인 첨탑이 치솟았다. 장식적인 아르 데코 빌딩이 전성기를 누릴 이즈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3개월만에 기적적으로 탄생하게 된다.
 
1931년 5월1일 맨해튼 중심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SB)이 공식적으로 개관하며 이전 최고 빌딩인 크라이슬러 빌딩의 왕관을 빼앗았다. 크라이슬러는 11개월간의 뉴욕 최고 빌딩의 권세를 하야하고 엠파이어에 왕좌를 건내준다. 그리고 엠파이어의 독주는 71년 월드트레이드센터(WTC)가 세워질 때까지 40여년간 지속됐다. 9.11 테러 이후 WTC의 트윈타워가 사라진 뉴욕의 스카이라인에서 두 빌딩은 단연 왕과 왕비처럼 돋보인다.
 
 
■빌딩의 역사
 
350 Fifth Avenue.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빌딩 엠파이어가 자리하기 130여년 전 이 곳은 낚시꾼들이 몰리는 있는 연못마을에 불과했다. 1799년 존 톰슨라는 이름의 농부가 20에이커의 부지를 2600달러에 사들였다. 톰슨은 26년 후 찰스 로튼에게 1만달러에 땅을 팔았고 2년 후 미 최초의 백만장자인 존 제이콥 아스토의 아들인 아스토 주니어가 투자용으로 2만500달러에 매입했다. 모피무역과 부동산업으로 재벌이 된 아스토 명문가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1859년 제이콥 아스토 주니어는 33가 5애브뉴 북서코너에 대형 맨션을 지었고 매년 400명의 VIP들을 초대해 파티를 벌였다고 한다. 이름하여 '포 헌드러드' 소셜클럽의 시작이었다. 1862년 제이콥 주니어의 동생 윌리엄 블랙하우스 아스토가 34가 5애브뉴 남서 코너에 맨션을 짓는다.
 
이어 1893년에는 제이콥 아스토 주니어의 아들 윌리엄 월도프 아스토가 33가 5애브뉴 코너에 자신의 맨션을 허물고 미들네임 '월도프'를 딴 호텔을 짓게된다. 그의 목적은 순전히 큰엄마 아스토 부인의 심경을 건드리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월도프 호텔이 완성되자 아스토 부인은 업타운으로 이사가고 아스토의 사촌 존 제이콥 아스토 4세가 월도프 옆에 호텔을 짓는다. 앙숙지간이던 사촌들은 화해를 하고 합쳐져 초호화판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로 태어난다. 이로부터 35년 간 월도프아스토리아는 뉴욕의 고급호텔로 명성을 자랑한다.
 
ESB의 건축은 공황기 두 자동차사 회장의 경쟁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월터 크라이슬러의 크라이슬러 빌딩과 GM 창립자 존 제이콥 라스콥은 '누가 더 높은 빌딩의 주인이 되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미국이 대공황에 신음할 즈음 존 제이콥 라스콥 피에르 듀 퐁트 외 재계 인사들은 크라이슬러를 능가할 빌딩 건립을 구상했다. 이들은 34가 5애브뉴가 미드타운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1928년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을 200만 달러에 매입한다. 이들은 엠파이어스테이트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전 뉴욕주지사이자 대통령 후보자인 알프레드 스미스를 '얼굴마담용' 회장으로 모셔왔다. (그러나 훗날 록펠러센터가 미드타운이되면서 이들의 기대는 빗나갔다.)
 
1930년 1월22일 엠파이어 공사를 위한 굴착공사가 시작됐다. 슈레브 램 앤 하몬 건축회사 소속 윌리엄 램의 지휘로 인부들이 빌딩공사에 착수했다. 공황기에 튼튼한 육체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뉴욕으로 몰려왔다. 서부에서 캐나다에서 3000여명의 인부가 이 기적의 공사에 가담하게 된다. 이들은 1주일에 4층씩 쌓아올라갔다. 엠파이어 공사 중 사고로 사망한 인부의 수는 40~60여명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빌딩 측은 단 6명이 생명을 잃었다고 밝히고 있다.
 
1931년 5월1일 드디어 미 대통령 후버가 백악관에서 스위치를 누르면서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의 조명은 커지고 빌딩이 문을 열었다. 아르 데코의 우아함과 고전적인 균형미를 갖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은 뉴요커는 물론 공황으로 울적했던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회복시켰다. 크라이슬러의 화려한 여성미에 비할 때 엠파이어는 위용있는 남성미를 한껏 과시했다. 1933년 할리우드는 엠파이어에 경배를 표하며 영화 '킹콩'의 무대로 삼았다.
 
ESB는 세계 최초의 100층 이상 건물이 되었고 41년간 세계 최고의 건물 챔피온으로 위용을 떨쳐오다가 1971년 월드트레이드센터 빌딩에 의해 왕좌를 빼앗겼다. 9.11 테러 이후 엠파이어는 다시 뉴욕 최고의 건물 시카고 시어즈 타워에 이어 미 두번째 높은 빌딩으로 복귀했다. 2005년 현재 엠파이어는 1위 타이페이의 타이페이타워 101에 이어 세계 9번째 높은 빌딩이다. 2031년 ESB는 100세가 된다.
 
 
■비극과 해피엔딩의 무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날은 1945년 7월28일. 안개가 자욱했던 이 날 미 공군 전투기 B-25가 78층과 79층에 충돌하면서 40분간 화재에 휩싸였다. 이 사고로 3명의 공군과 11명의 건물 입주자의 목숨을 잃었으나 건물 구조에는 이상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 빌딩은 자살의 장소 '인기'가 높았다고 해야할까. 빌딩 역사상 30여명 이상이 인생의 마지막 무대로 엠파이어 전망대를 선택했다. 전망대에서 자살의 위험이 제기되자 1947년 빌딩 측은 11명의 평복 안전요원을 배치한다. 그 두달 후엔 아예 자살방지용으로 4피트반짜리 철제 담장을 설치하게 됐다.
 
 
■찾아가기
 
맨하탄 34가에 위치한 뉴욕시의 명소 엠파이어 스테이트는 뉴요커보다 관광객에게 더 인기가 많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영화 '킹콩',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비롯해 90여편의 영화에 출현했다.
 
1931년 완공된 이 빌딩은 높이가 1,453피트로 뉴욕시에서 가장 높다. 86층의 전망대에 오르면 뉴욕시 5개 보로 80마일 전방을 모두 살펴볼 수 있다. 바쁜 날 가면 관광객들이 몰려 최장 2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일단 올라가면 뉴욕시 전체의 장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시간을 절약하려면 온라인(www.esbnyc.com)으로 미리 티켓을 구입하면 된다.
 
▶티켓은 성인의 경우 16달러, 아동(6~11) 10달러, 청소년(12~17세) 14달러, 시니어(62세 이상) 14달러이며 5세 이하는 무료다. 이 가격에서 14달러를 추가하면 뉴욕에서 가장 높은 102층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전망대는 주중에는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 연다. 주말에는 오전 9시30분부터 밤 12시까지 개장한다. 마지막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밤 11시15분이다. 단 구름이 많이 끼면 전망대가 문을 닫는다. 전망대 입구는 350 5애비뉴에 위치해 있다.
 
▶가는 길; 전철은 6번을 타고 33가 역에서 내리거나 B, D, F, N, Q, R 노선을 타고 34가 역에서 내리면 된다.
 
 
Posted by 비회원